당신은 고개를 천천히 숙이고 내 앞에 부복했지요. 언제나 올려다 봐야 했었는데, 이제는 당신의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다. 싸아아──. 세 발자국 남짓의 거리 사이로 바람이 지나갑니다. 당신의 잿빛 머리카락이 바람에 살랑이고, 그와 동시에 내 가슴에 있는 여왕의 황금장식이 맑은 소리를 내며 흔들렸습니다. 당신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. 기뻐하고 있습니까. 아니면 나처럼…웃을 수 없습니까.
"……."
"아아. 고맙군."
어느새 내 옆으로 온 아슈빈이 입꼬리를 올리곤 씨익 웃으며 내 대신 인사를 받습니다. 나는 말없이 고개를 떨구었지요.
흔히 말하는 '정략 결혼'입니다. 내 어깨에 있는 공주라는 짐이, 내 안에 흐르는 여왕의 피가, 이 결혼이 필요하다고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습니다. 양 국을 위해서도 이것이 틀림없이 옳은 길이겠지요.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솔직하게 수용할 수 없는 것은, 아마도 당신을 향한 이 희미한 연정의 탓일 겁니다.
실눈을 뜨고 곤란한 듯 웃던 모습도, 살그머니 걸쳐주었던 겉옷의 따스함도, 달콤한 차 맛도…아직 어제 일처럼 선명히 남아 있지만, 이제부터는 빛바랜 사진으로 품 속에만 남겨야 합니다. 네, 그래야만 한답니다.
얼마 후면 당신이 살고 있던 나라에 갑니다. 한 번쯤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고는 있었어요. 그렇지만 이런 형태로 가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. 이제 당신은 나를 '귀비'라고 부르겠지요.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나카츠쿠니의 '니노히메'도, 당신의 '히메'도 아닐 겁니다.
주저하며 고개를 든 나와 당신의 눈이 마주칩니다. 그러자 당신은 조금 웃었지요. 그리고 다시 한 번 내게 고개를 숙였습니다.
조용한 발걸음으로 멀어지는 당신의 큰 등이 오늘따라 유난히 작아보인다고 생각하면서, 나는 당신의 짧게 묶은 머리카락이 좌우로 흔들리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. 싸아아──. 어디선가 또 바람이 부는가 봅니다. 내 가슴의 동그란 장식이 따라 웁니다.
그래요. 내가울고 있습니다.
당신이, 울고 있습니다.
+)
리브x치히로 매드무비를 재탕하다보니 도저히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ㅜㅜ 아슈빈과 치히로 정략 결혼 시의 세 사람이에요. 이미지송은 Kokia의 사랑의 멜로디(愛のメロディ), 장면은 카자하야의 그 스틸을 리브로 바꿨다고 생각해 주시면 된답니다^_ㅜ 정말 오랜만의 연성이네요ㅇ<-< 차기 여왕과 적국의 신하, 꽤 모에로운 시츄에이션 아닌가요? 우후후v